사람들이 모여앉아 요기를 한다. 더불어 술도 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모닥불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서로 겨울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인사를 나눈다. 사냥을 하는 사람도, 농사를 짓는 사람도, 물고기를 잡는 사람에게도 겨울은 피치못할 휴식의 계절이었다. 게다가 겨울의 밤은 길고 춥다. 사람들은 간만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얻었고, 그 시간이 주는 무료함이라는 것도 오랜만에 느끼고 있다. 그 때 그들은 당연한 듯 이렇게 말했다. "누구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나?"

아이들에겐 이렇다 할 장난감이 없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런 것은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세상 천지가 그들의 놀이터였고, 보이는 것은 무엇이건 놀잇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밤중에 밖으로 나가 놀 수 있도록 허락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일찍 자는 것이 언제나 착한 어린이의 덕목 중 하나였어도, 아이들은 항상 그걸 지키기가 힘겨웠다. 긴긴 밤이 지루하다 칭얼대던 아이는 끝내 제풀에 지쳐 자리에 누워서는 숫제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했다. "그럼, 나 옛날 이야기 하나 해 줘."

나는 아직껏, 이 때 들려주던 이야기들이야말로 지금까지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최대의 유희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들만큼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깊은 자국을 남기고, 그들이 살아가는 바탕을 이루어 낸 것은 없었다. 그 시작은 무엇이어도 좋다. 혼자 숲에 가면 늑대가 나타나서 위험하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자정에 물방앗간 근처에 가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옆 마을 지주댁 아가씨가 언제 시집가나,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산 넘어 호수에서 십년 전에 누가 빠져죽었다더라, 는 이야기도 가능하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그렇게 시작되었고, 덧붙여졌고,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들은 그 안에 현실이 아닌 무언가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지주댁 아가씨는 은근슬쩍 공주님으로 격상되고, 숲의 늑대는 보름달이 뜨면 두 발로 달리는 생물이 되었다. 호수에 빠져죽은 처녀는 원령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을 물 속으로 끌어들이고, 물방앗간의 까마귀들은 동짓달에 찾아오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런 변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종종 이쪽이 현실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그것을 알기에, 수시로 이야기의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현명하면서도 어리석은 군주들이 존재했던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은 변하고, 이야기의 형태도 변한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이야기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은 지난 것 같다. 우리가 가장 오랫동안 즐겨왔던, 가장 소박하고 풍성한 상상력이 넘쳐흐르는 이야기들은 이제 어린이 책장에서만 찾을 수 있다. 아이들조차, 이제는 밤에도 놀 수 있는 다른 장난감들을 얼마든지 갖고 있다. 우리에겐 여가 시간도, 그 시간을 보낼 만한 유흥거리도 어느 때보다 많이 생겼다. 그 중 이야기의 즐거움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이라면, 보다 재미있는 다른 것을 집어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재미 외의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었던 것은 현실이 아닌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우리 눈앞의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 상상력과 언어만으로 만들어낸 다른 세계는 수많은 사람의 희망을 담아 '꿈' 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 꿈은 오늘날까지 갖가지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때로 새로운 현실을 세상에 덧붙여 나가는 단초가 된다.

물론 내가 아직껏 가장 사랑하는 것은- 비주얼과 사운드로 새롭게 무장하지 않은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이야기들이다. 누구나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동화들이다. 그것이 수많은 편견과, 안이한 우연과, 보이지 않는 차별로 가득한 과거의 자취라고 알게 되어도 이미 대뇌엽에 뿌리내린 애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내가 가진 꿈과, 아름다움과, 애정은 모두 그 오래된 이야기들에서 배웠다. 그리고 나는, 한 번 그 환상의 세계에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이야말로 현대의 이야기꾼들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서도 가장 열렬한 관객임을 알고 있다. 상상의 세계를 사랑하는 법이야말로, 저학년을 위한 동화에서 진정 가르쳐야 할 일인 것이다.

- 2005. 12. in egl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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