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규스타시옹 드 사바욘 2008 (프렌치) - 수원 근방
이렇게 오래된 건 문제가 있다;;; 이건 올 여름에 했던 이벤트란 말이야;;;; 나로서는 두 번째로 참석해 본 사바욘님의 만찬으로, 사실상 마지막 만찬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좋은 것은 과거에 속해 있다. (묵념) 오븐이 없고 훈제기가 있는 장소의 특성이 드러난 메뉴로, 오븐 요리를 좋아하는 본인으로서야 (특히 디저트 부분의) 구성이 조금 유감스러웠지만 맛은 그저 감사했다. 지방 부위에는 소금을, 살코기 부분에는 강황을 발라 하루종일 숙성시켜 구웠다는 돼지고기의 맛은 아직도 혀에 삼삼하다.

가쓰라 (일식) - 선릉 근방
맛은 적당히 괜찮은 정도이지만, 보통 우동집 내지는 라멘집보다 살짝 더 얹은 가격에 꽤 괜찮은 이자카야 안주 메뉴를 즐길 수 있어 좋아한다. 고기감자를 그대로 으깨서 튀긴 듯한 맛의, 간장 양념이 짭잘한 고로케가 일견이다.

파리 크라상 키친 (이태리) - 삼성 근방
어차피 이 근처에 괜찮은 파스타집은 거의 없으니 반드시 파스타나 피자를 먹어야만 하겠다면 추천한다. 어지간하면 그냥 메뉴를 다른 것으로 고르자. 이것들은 면 삶아서 비싼 재료 든 소스 끼얹으면 다 맛있는 줄 아나. 아니, 비싼 재료인 건 맞나?

사비루 (한정식) - 역삼 근방
르네상스 호텔의 한식당. 호텔 식당들은 뷔페를 제외하면 거의 다녀보지 않아서, 사실 어느 정도의 요리 수준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번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최소한 재료는 여느 식당보다 좋은 것을 쓰고 있지 않나 싶다. 갈비도 맛이 있었지만, 그렇게 커다란데도 그렇게 연하고 섬세한 맛이 나는 갈치구이가 인상깊었다.

진진바라 (한정식) - 선릉 근방
회식집으로는 확실히 적합하구나 싶은데, 꽤 저렴한 가격에 갖출 것 대충 다 갖춘 한정식 코스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이유없는 가격이 있나. 맛도 그냥저냥해서 어디에 맛있다고 추천할 만한 집은 못 된다. 그래도 한정식을 공짜로 먹었는데 물론 좋지요.

송강장어 (장어) - 선릉 근방
봉은사 근방에 송강이 있고, 포스코 근방에 송강장어가 있다. 이유가 없는 작명 같지는 않은데 상관 관계는 잘 모르겠다. 송강보다야 물론 맛이 못하지만, 1만 5천원짜리 장어구이 정식이 제법 지친 직장인을 힘나게 한다.
 
금수복국 (복어) - 압구정 근방
이래서 제대로 먹어보기 전엔 말을 하지 말라는 건가. 내가 그간 먹어본 복어는 뭐였지!? 싶을 만큼 맛있는 복어회. 혀끝에 찹찹 감기는 탱탱한 맛이 일품이었다. 국물이 시원한 건 인정하지만 난 아무래도 탕이나 지리보다는 복어회와 복어튀김이 좋다 'ㅠ' 복어의 맛에 더 집중하고 싶어서, 오히려 너무 많이 딸려나오는 잡것(지못미 대하 지못미 전복)들이 짜증스러울 지경이었다.

심즈타파스 (이태리) - 홍대 근방
잠발라야다 잠발라야 'ㅂ' 근데 분명 스페인 요리를 하는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왜 이태리라고 적혀 있는 거지?;; 좋은 선배님이 소개해 주신 좋은 맛집. 스파이시한 맛인데도 부담스럽지 않고, 숟가락을 계속 할짝거리게 만들만큼 맛있다. 역시 맛집 소개받을 때만큼 보람찬 때가 없지.

책 한 권 들고 파리에 가다 (여행기)
중국인 부부의 프랑스 여행기. 문화대혁명의 한가운데를 걸어나온 이들에게 프랑스 대혁명의 울림은 남달랐다. 그들은 위고의 <93년>을 손에 들고 혁명의 흔적을 찾아 파리를 누빈다. 드넓은 유럽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어차피 다 볼 수 없다면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여행이 가진 뚜렷한 컨셉은 좋은 선배의 안내와 같았다. 참고자료의 역할을 제하고 나더라도, 인간의 위대함이 혁명과 사상이 아니라 관용과 박애에서 비롯됨을 나직하고 담담하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적어 내려가는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아름답다.

고리오 영감 (소설)
파리에 대한 우리의 수많은 이미지들은 대부분 발자크에게 빚지고 있다. (적어도 20세기 이전의 파리라면 틀림없다) 나는 그가 묘사하는 부도덕하고 활기차며 매정하고 우아한 파리와, 야심차게 그 도시의 입 속으로 뛰어드는 아름다운 청년들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 급변하는 사회의 수많은 단면들과, 더 고귀하지도 덜 비루하지도 않게 정확한 '인간 그 자체' 를 그려내는 그의 재주는 거의 수수께끼에 가깝다. 나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벨 아미 (소설)
이것 또한 내가 좋아하는 '파리와 미청년' 의 대결 구도. 아주 오래 전 세로 인쇄로 읽었던 시절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어렵게 어렵게 구했는데, 결론적으로 예전 것만은 못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한 기억력은 집요에 가까운 수준이라, 아마 책 전체에 예전 판본에서 잘린 부분을 체크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드러나 있는 각종 추한 인간 군상들은 차라리 발자크가 점잖아 보일 정도로 노골적인데,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역사)
가난하고 영리해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유학 혹은 상경길에 오른 식민지 한국 청년들이 선택한 몇 갈래 길 중 가장 불운하고 고난에 찬 길을 선택한 이들이 아닐까. 그들은 살아생전 영화를 누려본 일이 없다. 늘 숨거나 도망쳐야 했고, 가족을 굶주리게 해야 했고, 몸 성할 날이 하루 없었으며, 대부분 천수를 누리지 못했고, 심지어는 죽어서도 잊혀져야 했다. 어떤 무형의 가치를 위해 이렇게 스스로를 던질 수 있는 시대는 이제 가 버린 듯 하지만, 나는 그들의 피가 이 새로운 시대가 오게 만드는 역할의 한 축을 분명히 수행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핵심을 찌른다. 신념을 위한 그들의 생이 그저 헛되지는 않도록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아마 그들을 잊지 않는 것뿐이겠기에.

브로드웨이 인 드림즈 (뮤지컬)
아마 내가 최초로 본 한국 원안 뮤지컬인 것 같은데... 이런 걸 두 번 보기 두려워졌다. 우리나라의 컨텐츠 생산력이 정말 이 정도가 한계인 거라면, 한국 문화산업의 미래는 암담하다.

노다메 칸타빌레 (만화)
다른 니노미야 류가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든 수준인 것과 달리, 이 만화만큼은 언제나 유쾌하다. (아마 작가가 그만큼 자제력을 기른 거겠지) 클래식 입문서, 노다메라는 4차원 천재의 성장기, 더불어 치아키와의 로맨스까지 세 가지 축을 조율해 내는 솜씨는 압권이라는 표현을 쓸 만하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천재들 틈에서도, 콩쿠르 예선 탈락으로 귀국하게 된 윤롱에게 할애해 준 몇 페이지가 내게는 이 만화를 소장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던 듯.

2년 전 이맘 때 처음으로 먹고 다닌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자랑을 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목적은 애초부터 망가진 단편적 기록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냥 흘려보내질 운명이었던 수많은 식당들이 짧은 글로나마 오래 기억 속에 보관될 수 있었고, 명단에 새로운 집을 하나 하나 추가해 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딱 그만큼의 효과만 있어도 좋겠는데, 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정신적인 식탐의 기록도 남겨볼까 한다. 이미 몸은 통통 쪄 있는지라, 아무래도 마음을 살찌우는 데 더 신경써야 할 시점이다. -_-;;

넌센스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만, 신기하게도 뮤지컬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매우 낮다. 특별히 싫은 것도 아닌데 매번 영 몰입이 되지 않는달까. 주변에 그토록 즐비한 뮤지컬 애호가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신기하기조차 하다. 좋은 공연이었다, 고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큰 감흥이 없었던 건 아마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녀들은 모두 아주 적역이었고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외치고 노래하는 감정을 객석에서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뮤지컬에서의 감정이란 배우가 노래하는 동안 그물처럼 펼쳐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걷혀버리니까.

충사 (만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이 교류하는 내용을 좋아하고, 짤막하고 독립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며 더 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 만화에 나오는 인간들이 자신과 다른 미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아마 퍽 따뜻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불가해한 존재에게 우리가 일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공포인데,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이해 범위 바깥에 있는 이상 그 공포를 극복할 방법은 많지 않다. 그 드문 해결책 중 하나로 언제나 제시되는 것이 연민이 아닐까 요즘은 생각한다.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그대로, 그러나 차갑지 않게 그들을 바라보는 눈.

색,계 (영화)
식민지 시절 중국의 한 여대생이 겪어야 했던 터무니없는 고난은, 적어도 한국인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장절한 로맨스를 로맨틱하지 않게 묘사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은, 이 여자의 사랑을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만들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남자들은, 그 상대역이라기보다는 아마 무대 장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부랑청년 전성시대
(역사)
근대화... 더 정확히 말해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다간 지식인 청년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아주 오래되었다. 미국 독립의회의 창설자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자코뱅들,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낸 번사들, 일제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가들. 그들은 모두 젊고 무모한 에너지를 던져서 그 시대를 이끌어냈고, 보통 그들 자신은 별로 얻은 것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오래 기억될 만한 이야기들을 남겼다. 그들을 조금 더 즐겁고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었다.

모던수필
(수필)
말하자면 1920~30년대 잘나가던 블로거들의 블로그 포스팅 모음집이랄까... 근대 작가들의 잡기 모음집으로, 길이도 가지가지에 정말 주옥같은 글도 있고, 이름값이 아깝다 싶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글도 있다. 서로의 글에 서로를 등장시키기도 예사라 읽다보면 그 시대의 작가들이 한 때 사람들 사이에서 숨쉬다 간 인간이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