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 때 처음으로 먹고 다닌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자랑을 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목적은 애초부터 망가진 단편적 기록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냥 흘려보내질 운명이었던 수많은 식당들이 짧은 글로나마 오래 기억 속에 보관될 수 있었고, 명단에 새로운 집을 하나 하나 추가해 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딱 그만큼의 효과만 있어도 좋겠는데, 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정신적인 식탐의 기록도 남겨볼까 한다. 이미 몸은 통통 쪄 있는지라, 아무래도 마음을 살찌우는 데 더 신경써야 할 시점이다. -_-;;

넌센스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만, 신기하게도 뮤지컬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매우 낮다. 특별히 싫은 것도 아닌데 매번 영 몰입이 되지 않는달까. 주변에 그토록 즐비한 뮤지컬 애호가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신기하기조차 하다. 좋은 공연이었다, 고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큰 감흥이 없었던 건 아마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녀들은 모두 아주 적역이었고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외치고 노래하는 감정을 객석에서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뮤지컬에서의 감정이란 배우가 노래하는 동안 그물처럼 펼쳐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걷혀버리니까.

충사 (만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이 교류하는 내용을 좋아하고, 짤막하고 독립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며 더 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 만화에 나오는 인간들이 자신과 다른 미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아마 퍽 따뜻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불가해한 존재에게 우리가 일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공포인데,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이해 범위 바깥에 있는 이상 그 공포를 극복할 방법은 많지 않다. 그 드문 해결책 중 하나로 언제나 제시되는 것이 연민이 아닐까 요즘은 생각한다.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그대로, 그러나 차갑지 않게 그들을 바라보는 눈.

색,계 (영화)
식민지 시절 중국의 한 여대생이 겪어야 했던 터무니없는 고난은, 적어도 한국인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장절한 로맨스를 로맨틱하지 않게 묘사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은, 이 여자의 사랑을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만들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남자들은, 그 상대역이라기보다는 아마 무대 장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부랑청년 전성시대
(역사)
근대화... 더 정확히 말해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다간 지식인 청년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아주 오래되었다. 미국 독립의회의 창설자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자코뱅들,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낸 번사들, 일제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가들. 그들은 모두 젊고 무모한 에너지를 던져서 그 시대를 이끌어냈고, 보통 그들 자신은 별로 얻은 것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오래 기억될 만한 이야기들을 남겼다. 그들을 조금 더 즐겁고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었다.

모던수필
(수필)
말하자면 1920~30년대 잘나가던 블로거들의 블로그 포스팅 모음집이랄까... 근대 작가들의 잡기 모음집으로, 길이도 가지가지에 정말 주옥같은 글도 있고, 이름값이 아깝다 싶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글도 있다. 서로의 글에 서로를 등장시키기도 예사라 읽다보면 그 시대의 작가들이 한 때 사람들 사이에서 숨쉬다 간 인간이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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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7 21:2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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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나 2008/10/27 22:0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아아, 간만에 보니 감격의 쓰나미가.... T^T 정말로 감사드리옵니다. 지금 보니 또 얼핏얼핏 맘에 안 들고 눈에 밟히는 곳은 있지만 역시 분위기 자체는 만족스러웠던 물건이예요. 글고 모던수필은 정말 ㅋㅋㅋ한 물건이 맞습니다. 기회 닿는 대로 몇 편 읽어보시게 해 드립죠.

      열화와 같은 박수를 남겼어요. 토호호.